1Q84 - 하루키의 조각들. 무라카미하루키


 <1Q84>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예전 하루키 소설 속 조각들이 떠오른다. 그 데이터베이스들이 <1Q84>와 맞물리면서 이야기는 더 풍성해진다. 처음 생각난 소설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이 소설은 <해변의 카프카>도 떠오르게 한다. 아무래도 각자 상관없었던 인물들이 교차되면서 하나의 점으로 이어간다는 맥락은 같다. 포니테일과 스킨헤드의 콤비를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났다. 하지만 초기작에 비해 더 섬세해졌다. 고마쓰의 말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독자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것을 소설 속에 끌어들일 때는 되도록 상세하고 적확한 묘사가 필요해. 생략해도 괜찮은 것, 혹은 반드시 생략해야 하는 것은 대부분의 독자가 이미 목격한 적이 있는 것에 대한 묘사야. 


 문장 역시 밀도 있고 풍부해져서 나는 그 문장사이를 유영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조각을 음미하고 곱씹으며 전작들을 생각해 보았다. 


 첫 시작은 여자주인공 아오마메는 꽉 막히는 수도고속도로에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듣는다. 아오마메는 그 작곡가가 야나체크이며 곡이 신포니에타라는 걸 어떻게 안건지 알 수 없다. 그 곡을 듣자마자 알게 되었다. 하루키의 소설에는 수많은 음악이 나온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보면 하루키는 나는 글쓰기를 거의 음악에서 배웠다. 역설적이지만, 만약 그토록 음악에 빠져들지 않았다면 어쩌면 소설가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설가가 된 지 삼십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여전히 소설 창작의 많은 방법론을 뛰어난 음악에서 배우고 있다. 라고 말했다. 그래서 하루키 소설 뒤에는 많은 음악들이 배경음악처럼 흘러나온다. 사실 나에게 하루키 속 음악은 그저 문장에 불과했다. 어쩐지 그 음악들을 들으면 내가 구축해온 하루키 월드가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현실의 알람 같은 생각이 들어 굳이, 찾아 듣고 싶진 않았다. 마태수난곡이나 평균율이나, 이런 건 현실 속 음악이 아니라 소설에서 지내어낸 존재하지 않은 음악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작년 생일선물로 친한 동생이 <소설 속에 나오는 클래식 음악> CD를 선물로 줬다. 그 선물도 바로 뜯지 않고 방치하다 요 근래 한번 들어볼까(볼 때마다 방치했다는 죄책감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CD를 들었다.


 듣는 순간 18세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미국 1950년대 헐리우드 영화가 생각났다. 사건이 시작되기 전에 영어로 가득한 화면이 펼쳐지고(영화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그 위를 이 음악이 흘러나올 것만 같다. 만약 이 클래식이 택시에서 흘러나온다면 꽤 설렐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쉽게 물드는 편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기 전 이 음악을 알았더라면 나는 아무 감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행복감을 느끼며 작곡했다는 이곳은 어쩐지 사건의 시작, 혹은 불행을 암시하는 느낌이 강렬했다. 


 마이클 커니햄의 <세월>처럼 버지니아 울프와 그 소설, 그리고 그 소설 속 작중인물을 딴 장미부인 별명을 가진 여인이 생각났다. 아오마메는 생각한다. 신포니에타와와 아오마메는 무슨 접점이 있었던 걸까? 시공간을 뛰어 넘는 듯 한 착각이 들었다.


 어쩌면 신포니에타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그녀는 꽉 막힌 수도고속도로를 탈출하기 위해 택시 기사의 조언에 따라 수도고속도로 비상계단으로 향한다. 현실은 언제든 단 하나밖에 없어요, 라는 말을 세기면서.


 낮에는 스포츠센터에 일하는 아오마메. 그녀는 버드나무 저택의 노부인과 인연이 닿아 그녀의 부탁으로 심각 할 정도로 가정폭력을 행사는 남자를 저쪽으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일을 매우 치밀해서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덴고는 수학을 가르치는 작가지망생 강사이다. 아직 등단은 하지 않았지만 고마쓰의 눈에 띄어 소일거리 맡아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이었다. 한명은 증인회 신자의 딸로서 한명은 NHK수금원의 아들로써 그리 달갑지 않은 주말을 보내는 우울한 초등생이었다. 얼마나 정신적 폭력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으면서 그 깊이가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어 안타까웠다. 이 소설은 분명 소설일 테지만 이러한 아이들이 분명 존재할 테니까. 그리고 그 트라우마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을 얽매이게 한다. 평범한 일요일에도 말이다.


 이 소설에서는 종교집단이 나온다. 이 소설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다. 고마쓰는 후카에리(본명은 후카다 에리코)의 소설 <공기 번데기>를 덴고에게 고쳐서 신인상에 응모하자고 제안한다. 제안이라고 하기엔 일방적이지만. 그런데 이 <공기 번데기> 소설을 하루키의 많은 조각들을 생각나게 한다. 우선 산양. 하루키 소설에서 양이 처음 등장한건 <양을 둘러싼 모험>이란 소설이다. 쥐 3부작의 마지막편이다. 하루키는 이 소설을 쓸 때 면양 조사를 많이 했지만 그 만큼 써먹질 못했다, 라는 글을 어디서 봤는데 30년이 지나도 양이야? 이정도면 정말 써먹을 때로 써 먹은 거 아니야? 라고 웃게 되었다. 사실 하루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양, 정확히는 양아저씨를 좋아한다. <양을 둘러싼 모험>에서 양도 권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산양은 그저 산양일 뿐인지 리틀피플이 나오는 중요한 매개체인지는 알 수 없다. <공기 번데기>의 내용은 산양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소녀가 벌로 죽은 산양과 함께 갇히게 된 이야기다. 그런데 죽은 산양에서 리틀피플이 나오면서 공기 번데기를 소녀와 함께 만든다. 리틀 피플. 리틀피플은 <TV피플>의 소설 속 TV피플이 생각난다. 그들은 호우호우 라고 추임새인지 소리를 내는데 그 모습은 <해변의 카프카>에서 조니 워커가 고양이를 죽이기 전 휘파람을 부르는데 그 노래는 디즈니 영화의 <백설공주>에서 난쟁이들이 일을 할 때 부르는 <하이호>였다. 백설공주 하면 <어둠의 저편>까지 멀리 가야한다. 하루키 소설 이야기를 하게 하게 되면 점점 브레인스토밍처럼 연관 단어가 넓게 펼쳐지고 만다. 그러고 보면 후카에리와 리틀피플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생각나다.  


 하루키는 <옴 진리교>에 관한 르포르타주 책을 쓴 적이 있다. <언더그라운드>, <약속된 장소에서> 이 두 편은 가해자, 피해자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책이다.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그날 옴진리교 사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하루키의 문학 터닝 포인트라고 말하는데 사실 이 책보다는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을 춘다>가 생각났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주인공에게 너는 신주님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반드시 콘돔을 했음에도 아이를 가졌으니까, 처녀수태를 한 것이다. 물론 그녀가 순수한 처녀는 아니다. 하지만 반드시 콘돔을 했음에도 상대방은 산부인과 의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중절수술 이후에도 임신을 하게 되고 결국 주인공을 낳게 된다. 


 나는 종교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그들이 행복하고 남에게만 피해만 주지 않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 종교로 인해 마음이 단단해진다면 그걸로 된 거라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선구’는 처음엔 코뮌 같은 농업공동체 생활이 중심이었다. 후카에리 아버지의 중심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는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사상을 모토로 만든 조직이지만 결국 혁명분파는 총기사건으로 자멸하게 된다. 어떻게 철저히 머리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조직이 종교화가 됐는가는 후라에리가 데리고 온 리틀피플 때문이었다. 처음엔 덴고는 이 이야기는 소설이지만 사실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오마메는 노부인의 부탁으로 의뢰받은 사람을 저쪽 보낸 후 두 번째 의뢰를 받게 된다. 바로 선구의 리더를 저쪽으로 보내는 것.


 <트릭>이라는 일본 드라마를 좋아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초능력이라는 능력으로 온갖 사람들을 현혹시켜 돈을 갈취한다. 물론 그들은 초능력자가 아니다. 트릭에 불과한 것. 그런데 정말 전능한 신이 있다고 혹은 시계를 공중에 올릴 수 있다고 그 신이 그 존재가 날 바꿀 수 있을까? 절대자의 존재를 그저 신봉한다고 나라는 존재가 달라질 수 있을까? 


 균형 그 자체가 선이다. 


 저울이 생각났다. 어느 쪽도 기울지 않는 균형 그 자체인 저울. 하지만 선 자체가 올바르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대에게 악일수도 있는 것이다. 


 불행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혹은 경고에 대해서. 요즘 생각이 드는 건데 불행, 불안은 나에게 직접 오면 그다지 큰 해를 끼치지 않는다. 내 불행이다. 내 불안이다. 이건 어떻게든 극복하면 된다. 하지만 상대의 불행은, 상대의 불안은 내 스스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슬프고 더 불안하다. 아오마메도 마찬가지.


 차라리 나에게 벌어진 일이라면 상관이 없는데 그것이 상대에게 닥치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이 나를 행한 경고라면- 소설 속 이야기지만 너무 끔찍하다. 내 불안도 리틀피플의 경고일까, 라는 망상을 잠시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건 사랑만세, 일 것이다. 조금 슬프게 끝날 것 같은 사랑이 다행히 3권이 나와 부활했다. 우시카와라는 카드를 내세우고 말이다.


 우시카와라는 캐릭터를 볼 때면 우직한 개가 떠오른다. <거울 속의 저녁노을>에 등장하는 말하는 개. 이미지는 하이에나와 개 중간쯤 하지만 더 고독하다. 개과는 떼로 다니지만 우시카와는 독고다이. 인생마저 독고다이. 자신이 옆자리가 비었음에도 아무도 앉지 않는 정도의 외모를 가진 사람. 이 문장을 읽고 이제부터 이런 아저씨들이 고독함을 느끼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 옆자리가 비었을 때 반드시 안아줘야겠다는 쓸데없는 사명감을 갖게 해주었다. 


 책 내용과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언더그라운드> 책 이벤트 할 때 1Q84에 등장하는 인물이 쓰여 있는 머그컵을 증정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나는 덴고와 아오마메 커플 머그컵을 생각하며 언더그라운드, 약속의 장소에서 2권을 주문했는데 2개 다 우시카와. 운명인건가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처럼, 이란 조금 우울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우시카와의 성실함을 좋아하게 되었다. 끈기, 노력. 분명 아오마메의 목을 죄어오는 추적이지만 우시카와 시점에서는 존경스러울 정도로 감탄스러웠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땐 잔혹하고 복잡한 이야기는 다 잊어버리고 동화를 읽은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용감한 소녀 기사가 왕자님을 만나기 위해서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용을 해치우고 왕자님을 만난 이야기. 소녀 기사가 왕자를 만나기 위해 바뀐 세계를 모험하는 이야기 같았다. 마음 끝이 달콤해졌다. 


 하지만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다. 제일 중요한건 그래도 역시 덴고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그 발작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비밀은 오직 우시카와가 쥐고 있는데 나중에  밝혀지지 않을까? 세계는 닫혔다고 선구의 리더가 말했는데 이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4권이 나오거나 쥐3부작 이후 <댄스 댄스 댄스>가 나온 것처럼 또 다른 속편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루키 소설 속에는 주인공이 사건에 휘말려 산 속에 들어가서 며칠 생활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양을 둘러싼 모험>에서 주인공이 쥐의 별장에서 생활하는 장면이다. 아마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먹으며 생활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곳에는 풍부한 음식들이 가득하고 여유롭다. 물론 고독하지만 그런 곳에 며칠 있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카프카가 은신했던 곳도 그렇고- 아오마메의 은신했던 곳은 그들의 비해 가장 현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셰에라자드>의 내용이 은신처에 음식과 물건을 제공 해주는 여자가 나온다. 여기서도 유부녀야? 도대체 유부녀들이 왜 이렇게 밖에 남자를 두는 거야, 이거야말로 판타지잖아. 유부녀 패티쉬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소설 중에 하나다. 아무튼 그 소설이 생각났다. 이제 하루키도 현대적으로 바뀌는가 싶지만 그래도 쥐의 별장이 그립다.


 역시 고양이, 라고 생각이 들지만 고양이들의 활약이 적어 슬펐다. 고양이 마을이라는 상징이 크지만 고양이 번데기도 참 귀여울 텐데 말이지.


오늘 달을 보니 역시 한 개 였다. 충분히 현실 세계다. 하지만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2개여도 상관이 없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준코 시마다 정장과 하얀 블라우스, 찰스 주르당 하이힐과 베이지색 스프링코트를 입고 수도고속도로를 먼저 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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